공감은 21세기 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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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 간 당기는 힘을 ‘중력’이라 한다면, 인간 사이에 당기는 힘은 바로 ‘공감력’이다. ‘공감(empathy)’이란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ühlung’의 번역어이다.

동서양 공히 공감(共感)의 주된 영역은 기쁨보다는 슬픔 내지 아픔에 있다. 인간의 ‘마음(心)’이란 이름의 판도라 상자 안에서 남의 고통과 슬픔을 내 것처럼 느끼는 것은 기쁨을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여기서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수준이 바로 공감력이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란 흉측한 말도 알고 보면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인간이란 뜻이다.

우리가 늘 쓰고 있는 ‘sorry’ 또한 ‘sore’가 어원이다. 즉, “나도 아프다” 라는 거다.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나눌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사람들이 결혼식에는 안 가도 문상은 꼭 챙기는 이유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감력이란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와 능력(리얼 피드백)이다.

바야흐로 지적자본, 매력자본을 넘어 ‘공감자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신뢰가 사회적 자본이었다면, 21세기 초지능융합사회에선 ‘공감’이 새로운 자본이다. 막강한 인공지능(AI)에 비해 인간만이 가진 유니크한 장점이 바로 공감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건 AI 탑재 로봇이나 메타버스 세계의 아바타로서는 접근 불가의 난해한 감성영역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개인적 영역이었던 공감은 향후 사이버공간을 포함한 공적 영역의 주된 탐구 대상이 되고 있어 초연결시대의 공감 소통은 인간 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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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I가 수능 만점을 기록하고, 현대 물리학 논문을 쓰는 수준에 이르는 등 인간의 학습과 업무영역 대부분을 침공해 들어옴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두려워하고 있다. 내 직업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나만 잉여인간으로 전락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최근 흐름은 사뭇 다르다. 인간은 과소평가되어 있고, 반대로 로봇은 과대평가됐다는 것이다. 다만 우수한 사람의 기준이 바뀐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컨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변호사의 조건은 판례조사나 변론서 작성 능력이 아닌 클라이언트에 대한 높은 경지의 공감력 여부다.

<리더십 4.0>의 핵심 컨셉도 극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탁월성과 성과주의로 상징되는 기존의 엘리트들은 몰락하고 새로운 공감형 리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X세대는 ‘목표’를 지향하지만, MZ세대는 ‘공감’을 지향한다. 공감이 있으면 문화가 되고, 공감 없이 지시만 있으면 제도가 된다. 조직의 엔진인 직원 역량은 조직 내 가치공유도(value sharing) 내지 공감도와 정비례하며, 공감은 최종 성과를 만드는 기초원료가 된다. 요컨대 공감은 조직 구성원의 실행을 여는 열쇠다. 따라서 향후 새로운 리더의 조건은 공감문화 제작자가 되어야 한다. 장차 CEO의 정의 또한 ‘Chief Empathy Officer’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나는 공감한다. 고로 존재한다.” 

결국 공감이란 경청으로 시작하여 감동으로 끝나는 감성여행 길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공감형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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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거친 국내 정상급 경영평가 전문가이며, 스타 강사로도 유명하다. 또한 베스트셀러,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 저자이자 현재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을 움직이는 50인’에 등재된 교보 광화문글판에 두줄칼럼 중 대표작 <겸손>이 최종 선정되어 주요 도시에 전시되고 있다. 「두줄칼럼」은 삶과 일에 대한 인사이트, 아이디어 및 최신 트렌드 등을 불과 ‘두줄’로 풀어낸 국내 최초의 독창적인 초미니 칼럼 (부제: Think Audition)이다. 내용은 주로 인문과 경영의 융복합 구성이며, 생각근육을 키우고 마음의 울림을 느끼게 하는 지식과 사색의 아포리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