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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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기쁨과 슬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같겠지만 드러내어 표현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장례식 문화다. 서구로 이민갔던 사람들이 남편 장례식에서 미망인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걸 보고 이상한 오해를 했던 경험들은 이 런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효(孝)가 핵심가치인 우리 사회에선 부모 상에 삼베옷을 입고 구슬픈 곡(哭)을 하지 않으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에 반해 서양인의 입장은 슬픔이란 개인적 문제라고 보기에 아무리 슬퍼도 자신의 눈물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시간 개념도 다르다. 서양이 선형이라면 동양은 원형이다. 서양이 단면적(monochronic)이라면 동양은 다면적(poly-chronic)이다. 원형적 시각에서 볼 때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기에 조급할 것이 없다.

따지고 보면 오늘은 내일의 어제다. 어떤 이는 과거란 ‘오래된 미래’라고도 한다. 마포 대포집 벽에 붙어있던 글귀도 인상적이다.

“청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중년은 현재를 이야기하며, 노년은 왕년을 이야기한다.” 일찍이 동양학 최고봉 노자는 <<도덕경>>에서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설파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서사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가 외친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하는 성찰이다. 당시 황제였던 카이사르는 자신이 죽은 뒤 황제의 자리를 조카 옥타비아누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드디어 로마엔 평화가 찾아왔다. 이때 호라티우스가 자신의 시집에 쓴 표현이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이는 그동안 끔찍한 전쟁을 겪으며 슬픔과 공포에 떨었던 로마 시민들이 이젠 마음 편히 쉬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오늘을 열심히 살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가 그 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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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 사이에서 라틴어 ‘Carpe Diem’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9년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로빈 윌리엄스 (키팅 선생 역)가 수업 시간에 여러 번 외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메시지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 외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구절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죽을 수도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결국 이러한 세계적인 고수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영어로 ‘현재(present)’가 선물과 같은 단어임을 상기해보라.

Now and Here!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now)이고,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여기(here)다. 두 단어를 합치면 ‘nowhere’가 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길인 것이다.

지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

오늘 사랑한다고 말하라.

너무 늦기 전에 꽃을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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