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6 [내일신문]

[김진귀의 ESG 경영]

삼정KPMG 김진귀 전무이사(ESG 정보공시/인증 리더)

 

세계적으로 ESG 공시기준 표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다년간에 걸쳐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EU 그린 택소노미,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의 지속가능성 표준(EFRAG Standards)으로 이어지는 가장 체계적이고 빠르게 공시체계를 제도화했다. 미국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의 기후공시 강화와 표준화 법안을 발표해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나 유럽 모두 회계기준처럼 민간에 위임하는 방식이 아닌 규제기관이 직접 ESG 공시기준 제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ESG 정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돼 우리도 좀 더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각계의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법적·제도적 기반의 부재로 대응 속도는 더딘 편이다. 다행히 2021년 8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의 국내 도입을 위한 한국지속가능성기준(KSSB)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정책제언서를 발간하고, 상장법인 사업보고서에 ESG정보를 24년부터 공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ISSB 기준을 제정하는 전세계 14명의 위원에 백태영 성균관대 교수가 선임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게 되었다. 이를 통해 향후 우리나라의 특수성 반영에 도움도 얻을 수 있겠지만, 글로벌 차원의 ESG 정책에서 한국의 책임과 역할도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ISSB 기준 도입시 기업 부담 완화 장치 필요

문제는 ESG 공시 준비가 부족한 우리 기업들에게 국제적으로 빠르게 추진되는 공시 규제는 많은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ISSB 기준 도입을 통해 국제적인 ESG 공시 강화에 대응하되, ISSB 기준에서 허용하는 각 국가별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몇가지 정책적인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ESG 공시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고민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속히 정부 차원의 명확한 ESG 공시 로드맵을 수립해 기업들이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내 특수성을 고려한 연관 정책의 개발이다. ISSB와는 별개로 중소기업용으로 단순화된 공시 기준을 준비하고, 우리나라의 대표 업종(조선업 등)에 대한 공시 매트릭스 보완, 다양한 이종업종을 연결하는 국내 기업들의 공시 이슈도 미리 점검해 봐야 한다. 특히 기후영향 시나리오 분석의 경우 한국기업들의 적용이 쉽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 실정에 맞는 실무적인 모범기준과 사례를 준비해야 한다.

셋째, 공시기한 단축을 위해 현행 온실가스 배출량 검증 시점과 환경정보공개시스템 공개 및 검증시점의 변경 등 현재 운영 중인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재무정보 공시에서 잘 활용되고 있는 전자공시시스템(Dart)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한 공시보고서 작업의 편리성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US SEC 기후공시 강화법안 중 다음과 같은 몇가지 조항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다. 우선 공시 의무화와 제3자 인증 시점을 상장대기업, 상장중소기업, 소규모기업으로 세분화해 차등 적용했다.

특히 스코프3(Scope3) 탄소배출량 공시 관련해 다양한 실무부담 완화조항이 있다. Scope3 탄소배출량 공시는 1년 유예하고 제3자 인증대상에서는 제외했다. 공시 일정 준수를 위해 3분기까지의 데이터로 추정한 연간배출량 공시를 허용했고, 세이프하버 조항을 적용해 Scope3 탄소배출량에 대한 기업의 법적 책임을 크게 경감했다. 또한 탄소배출량 제3자 인증도 제한적 검증부터 받고 2년 이후에 합리적 검증을 받도록 했다.

ESG 투자 분야도 코리아디스카운트 가능성

최근 정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방지법(IRA)에 대해 적기에 사전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향후에 해외 자본시장은 모두 제도화된 ESG 공시가 안착되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만 공시제도 부족으로 해외투자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때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해소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